계엄 이후는...
2024년 12월 3일 비상 계엄 이후의 생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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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오늘의 일기에는 <서울의 봄>을 관람했던 기록이 있었고,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날 새벽,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다면, 우울하고 불쾌감을 안겨주던 그 영화가 현실이 되어있었을 지도 모른다.
부끄럽지만 나는 안일한 사람이고, 시민의식이 부족했을지 모르겠다. 항상 타인의 일에 무관심하여, 내가 의미 부여하는 일들에만 시간과 정성을 쏟아왔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내가 열정을 가져온 일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들이 지속되고, 우리나라의 안정된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건 여태 깨닫지 못했던 거 같다.
계엄 사태는 잠시 잊고 있었던 2023년 5월 31일의 서울 경계경보 오발령 사건을 내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었다. 그날 새벽, 온 서울에 라디오 방송으로 경보가 울려 퍼졌고, 여기저기서 재생되는 방송 소리는 서로 겹치고 뒤엉켜 정확한 내용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 가족과 함께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안정감은 들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의 경보가 오발령이었기에, 그리고 이번 계엄령이 빠르게 해제되었기에,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행운이 계속 우리 편일 거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운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건이 있던 당일 저녁, 해외 SNS가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국내 대표 SNS들은 다행히 차단되지 않았지만, 해외 서비스에 비해 요청 처리 능력이 부족해 접속 마비를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해외 플랫폼 덕분에 국회의 긴박한 새벽 상황이 생중계될 수 있었고, 많은 시민들이 그를 통해 집결하고 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보건데, 만약 통신망까지 온전히 차단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작당이 더 철저했다면, 이번 일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을지 장담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통신 시설을 파괴시키면서 상대의 군을 무력화하려는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스타링크를 통해 통신망을 유지함 전쟁 초기의 위기를 극복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스타링크 인프라가 지원되지 않는 터라, 대한민국에서의 인터넷 접속은 통신 3사 ISP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군정부가 이를 장악하지 않을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통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다. 그리고 이런 필수적인 연결망이 위협받는 상황까지 전개된다면, 개개인의 대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무심한 척 나 자신에만 관심을 가졌던 무책임한 태도를 반성해 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마도 개인으로서 행할 수 있는 작은 기여일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을 굳이 찾아보자면, 어느 SNS에 들어가도 12월 3일 이후 정치권의 동향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번 해프닝이 나처럼 무심하거나 무지했던 이들에게 경종을 울렸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가짜 뉴스와 근거 없는 선동을 판별할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한 때다.